20세기 중반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성경 서사 대작인 벤허(Ben-Hur 1959)와 십계(The Ten Commandments 1956)는 단순한 블록버스터나 시대극을 넘어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두 영화 모두 방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스펙터클한 연출로 화제를 모았으며 동시에 신념과 고난 그리고 구원이라는 인간 내면의 서사를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영화가 그려낸 이야기 구조와 인물 변화 그리고 종교적 메시지 전달 방식에는 미묘하고도 뚜렷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벤허와 십계를 각각 서사 구조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이 두 작품이 어떻게 같은 신화적 주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구현했는지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서사 구조 분석
벤허와 십계는 모두 고대 문명을 배경으로 하며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며 거대한 서사를 구축합니다. 하지만 두 영화가 전개되는 방식과 이야기의 기반은 본질적으로 다른 출발점을 가집니다. 벤허는 루 월러스의 소설 『벤허: 그리스도의 이야기(Ben-Hur: A Tale of the Christ)』를 바탕으로 하며 허구의 인물 유다 벤허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교차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즉 역사적 배경 속 허구의 개인 서사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반면 십계는 모세라는 구약성서의 실존 인물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출애굽기(Exodus)의 이야기와 비교적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화적 요소와 종교적 교리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서사의 신성함과 상징성이 더욱 강하게 강조됩니다. 벤허는 개인의 비극과 복수심 그리고 이후에 이뤄지는 구원의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벤허는 로마의 귀족이자 유대인으로 시작해 억울한 배신을 당하고 노예가 되며 이후 다시 자유를 얻고 복수를 실행에 옮기려 하지만 결국 예수를 통해 내면의 평화를 얻습니다. 반면 십계는 모세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민족을 이끌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서사입니다. 개인의 성장보다는 공동체의 해방 즉 민족 서사로 확장됩니다. 이처럼 벤허는 개인서사에서 출발해 종교적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십계는 종교적 사명을 띤 지도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신의 관계를 그립니다. 따라서 두 영화의 서사 구조는 유사한 듯 보이지만 시작점과 중점이 되는 요소가 분명히 다르며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각기 다르게 구성됩니다.
고난의 묘사와 인물 변화
벤허와 십계는 모두 주인공이 겪는 고난을 매우 정교하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이 고난이 서사 내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리고 인물의 내면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는 다르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벤허의 경우 주인공 유다는 명예롭던 삶에서 배신과 실추를 겪으며 바닥까지 떨어지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친구 메살라의 배신으로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고 본인은 로마 전함의 노예로 끌려갑니다.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파괴와 복수심으로 인해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내면의 고통을 이겨내고 복수를 내려놓으며 구원과 평화를 택합니다. 벤허의 고난은 철저히 자기 정체성 회복의 과정이며 그의 변화는 종교적 깨달음과 연결됩니다. 반면 십계의 모세는 애초에 지배자의 위치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파라오의 궁전에서 자라며 권력과 자유를 모두 누리지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이후 유대 민족의 해방이라는 사명을 부여받고 사막에서 고난을 겪으며 리더로 성장합니다. 모세의 고난은 개인의 자아실현이라기보다 신의 사명을 실현하기 위한 시험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그의 변화는 자신이 아닌 공동체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희생을 중심으로 그려집니다. 두 영화 모두 고난이 인물의 변화를 이끄는 장치로 기능하지만 그 목표와 방식은 상이합니다. 벤허는 내면의 구원을 향한 서사이고 십계는 민족의 구원을 향한 서사입니다. 벤허의 변화는 개인적인 깨달음의 이야기이며 십계의 변화는 신과 인간 그리고 지배와 해방 사이의 대립에서 나오는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메시지 전달 방식의 차이
벤허와 십계는 모두 기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로 분류되지만 그 방식은 매우 다릅니다. 벤허에서는 예수가 직접 등장하지만 정면에서 얼굴이 나오지 않고 목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상징적으로만 존재하며 유다 벤허의 삶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의 존재는 카메라와 음향 그리고 주위 인물들의 반응을 통해 느껴지며 관객은 마치 성경을 읽는 것처럼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 그를 인식하게 됩니다. 이와 달리 십계는 신의 존재를 훨씬 더 적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영화에서 모세는 실제로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불타는 떨기나무와 홍해의 갈라짐 그리고 십계명 돌판 등 시청각적으로 강렬한 기적의 장면이 수차례 연출됩니다. 즉 십계는 종교적 상징을 시청각적으로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며 관객이 직접 신의 개입을 체감하게 만드는 구성입니다. 또한 벤허는 복수와 구원의 문제를 개인의 선택으로 귀결시킵니다. 유다는 메살라를 용서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을 내면화합니다. 반면 십계에서의 메시지는 보다 명시적이고 집단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자유를 얻기 위해 신의 뜻에 따라 이동하며 모세는 그들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결과적으로 벤허는 관객으로 하여금 개인의 삶 속에서 종교적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영화이고 십계는 종교적 서사를 통해 사회적 정의와 믿음을 강력하게 선포하는 영화입니다. 두 영화 모두 종교적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는 조용한 감동으로 다른 하나는 장엄한 선언으로 표현되며 이러한 차이는 감상의 결을 전혀 다르게 만듭니다.
고전은 이야기 방식으로 기억된다
벤허와 십계는 모두 스토리의 힘으로 영화사의 걸작이 된 작품입니다. 동시대에 제작된 두 영화는 거대한 세트를 통해 장대한 서사를 담아냈고 관객들에게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과 답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선택한 이야기 방식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벤허는 인물 중심의 내면적 서사로 그리고 십계는 민족 중심의 외연적 서사로 각기 다른 관점에서 종교와 인간을 조명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영화라는 예술 매체가 같은 주제를 다룰 때도 얼마든지 다양한 서사 구조와 접근 방식을 통해 전혀 다른 감동과 해석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